오늘날 광양매실을 이야기하려면 광양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통했던 밤나무골 김영감님인 김오천 선생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다. 김영감님이 1931년 일본에서 밤나무 묘목과 함께 들여온 5,000주의 매화나무 묘목으로부터 광양매실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오천선생은 1902년 11월 21일(음력)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나던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의 광부생활로 돈을 모았고 1931년(30세때)에 귀국하면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를 비롯하여 감나무, 배나무 등 양질의 신품종 묘목을 가지고 들어왔다.
3년동안에 가지고온 묘목을 심고 관리하던 김영감님은 나무 키우는데 필요한 기술과 돈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에 들어가서 10년동안 일본과 광양의 고향집을 수없이 오고가면서 돈을 벌고 나무 키우는 기술을 익혔다. 김영감님은 두 번째로 일본에 들어가서는 당신이 광부생활을 했던 구천에서 광산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인부를 수 십명이상 많을때는 1백여명까지 썼고 고향마을 사람들도 10여명에 달했다. 1944년에는 완전 귀국하여 다시 밤나무, 매실나무 키우는 일에 매달려 45만평의 임야를 밤산으로 만들었고 집주변 언덕배기에는 매화나무를 집중해서 키웠다.
또한 김오천옹은 1952년부터 매실의 상품화에도 앞장서 해마다 매실 한약재인 오매와 금매 수십가마를 만들어 구례, 순천, 하동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하였으며, 매실농축액과 매실식초, 매실차 등 매실식품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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